간음한 여인
Author
김도윤
Date
2025-03-18 23:30
Views
83
간음한 여인
요 8:1-11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질문을 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라고 명하였는데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이 질문에 돌로 치라고 하면은 예수님께서 그동안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고 용서하라는 가르심에 모습이 됩니다. 반면 돌로 치지 말라고 하시면 율법을 어기고 간음을 장려하는 경우가 됩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현장의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하나씩 떠나가게 됩니다.
본문의 말씀은 몇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첫째,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죄가 만천하에 드러나 망신을 당하고 있는 여인은 분명 죄인입니다. 동시에 그 여인의 죄를 비난하며 정죄하고 돌을 들어 치려고 하는 서기관, 바리새인, 군중들 모두 죄인입니다.
그들의 양심이 그들의 죄를 지적하자 더 이상 자신들의 죄를 숨기지 못하자 하나씩 둘씩 그 자리에서 떠나게 됩니다.
둘째, 양심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마지막 관문이다라는 것입니다(요8:9).
양심은 손가락 끝의 말초신경과 같이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주는 마지막 경고장치입니다. 양심의 벨이 울리지 않으면 그대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 장치가 작동을 하지 않으면 사람은 죄에 자신을 노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사람들의 양심이 그들이 그 현장에서 떠나게 하였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그 여인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 죄가 없으니까 돌로 쳐도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의인의 권리를 포기하십니다.
심판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시고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율법적인 시각으로 이 여인을 보았지만 에수님은 사랑과 용서의 시각으로 여인을 보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구원이 있습니다. 이 여인과 같이 죄인된 우리가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그 분의 십자가의 보혈과 사랑을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 마음에 가지고 있는 돌들을 내려 놓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용서하셨듯이 내가 정죄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던지고자 한 정죄의 돌들을 내려놓고, 죄악의 현장을 떠나는 우리의 모습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
요 8:1-11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질문을 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라고 명하였는데 당신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이 질문에 돌로 치라고 하면은 예수님께서 그동안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고 용서하라는 가르심에 모습이 됩니다. 반면 돌로 치지 말라고 하시면 율법을 어기고 간음을 장려하는 경우가 됩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현장의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받고 하나씩 떠나가게 됩니다.
본문의 말씀은 몇 가지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첫째, 모든 사람들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3:10)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죄가 만천하에 드러나 망신을 당하고 있는 여인은 분명 죄인입니다. 동시에 그 여인의 죄를 비난하며 정죄하고 돌을 들어 치려고 하는 서기관, 바리새인, 군중들 모두 죄인입니다.
그들의 양심이 그들의 죄를 지적하자 더 이상 자신들의 죄를 숨기지 못하자 하나씩 둘씩 그 자리에서 떠나게 됩니다.
둘째, 양심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마지막 관문이다라는 것입니다(요8:9).
양심은 손가락 끝의 말초신경과 같이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해주는 마지막 경고장치입니다. 양심의 벨이 울리지 않으면 그대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이 장치가 작동을 하지 않으면 사람은 죄에 자신을 노출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실 때 사람들의 양심이 그들이 그 현장에서 떠나게 하였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그 여인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죄가 없습니다. 죄가 없으니까 돌로 쳐도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의인의 권리를 포기하십니다.
심판주로서의 권리를 포기하시고 그녀를 정죄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율법적인 시각으로 이 여인을 보았지만 에수님은 사랑과 용서의 시각으로 여인을 보셨던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구원이 있습니다. 이 여인과 같이 죄인된 우리가 용서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이 그 분의 십자가의 보혈과 사랑을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우리 마음에 가지고 있는 돌들을 내려 놓아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용서하셨듯이 내가 정죄하고 있는 사람들을 향하여 던지고자 한 정죄의 돌들을 내려놓고, 죄악의 현장을 떠나는 우리의 모습이 되길 소망해 봅니다.